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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삼킨 화산: 1816년, 탐보라 대폭발이 만든 서늘한 세상과 괴물의 탄생

일상에 스며들다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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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전 세계는 여름을 도둑맞았습니다.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대폭발이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날씨를 바꾸고, 굶주림과 질병, 심지어 불멸의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켰을까요? 그 놀라운 나비효과를 추적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야 할 한여름, 갑자기 눈이 내리고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된다면 어떨까요?
마치 공상 과학 소설의 한 장면 같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16년, 북반구의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여름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라는 기이하고 혹독한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은 놀랍게도 지구 반대편, 인도네시아의 한 작은 섬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화산 폭발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화산 폭발 중 하나로 기록된 1815년 탐보라(Tambora) 화산 대폭발이 어떻게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인류 역사에 깊은 상처와 함께 예상치 못한 창조의 영감을 남겼는지, 그 거대한 '나비효과'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재앙의 서곡: 고요한 섬의 거대한 분노, 탐보라 (1815년 4월)

1815년 4월 이전, 인도네시아 숨바와(Sumbawa)섬에 위치한 탐보라 화산은 수백 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아래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었죠.
마침내 4월 5일, 탐보라 화산은 굉음과 함께 첫 번째 분화를 시작했고, 며칠 뒤인 4월 10일 저녁부터 11일 새벽까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폭발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폭발음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으며,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암석, 가스는 하늘을 뒤덮어 사흘 밤낮 동안 주변 지역을 암흑으로 만들었습니다.
화산 폭발 지수(VEI, Volcanic Explosivity Index) 7에 달하는 이 폭발은 20세기 최대 규모였던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화산 폭발 지수(VEI)란?
화산 폭발의 상대적인 규모를 나타내는 지수로, 0부터 8까지의 등급으로 나뉩니다.
등급이 1씩 증가할 때마다 폭발력은 약 10배씩 강해집니다.
탐보라 화산의 VEI 7은 '초거대(super-colossal)' 규모의 폭발을 의미하며, 1만 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매우 드문 현상입니다.

폭발로 인해 탐보라 산의 높이는 약 4,300미터에서 2,850미터로 1,450미터나 낮아졌고, 산 정상에는 지름 6킬로미터, 깊이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칼데라가 형성되었습니다.
화산 주변 수백 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생명체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직접적인 폭발과 그로 인한 쓰나미, 기근 등으로 인해 숨바와섬과 인근 지역에서만 최소 7만 명에서 최대 12만 명에 이르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탐보라가 내뿜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전 세계를 덮치기 시작한 것이죠.


어둠이 삼킨 하늘: 화산재, 햇빛을 가리다

탐보라 화산 대폭발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가스, 특히 이산화황(SO₂)을 대기 중으로 분출시켰습니다.
이 중 미세한 화산재와 이산화황 가스는 강력한 상승 기류를 타고 지상 10~50킬로미터 상공의 성층권까지 도달했습니다.

성층권에 도달한 이산화황은 물과 반응하여 미세한 황산염 에어로졸(sulfate aerosol) 입자를 형성합니다.
이 황산염 에어로졸은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시키거나 흡수하여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양을 현저히 줄어들게 만듭니다.
바로 이 현상이 '화산 겨울(volcanic winter)' 또는 '양산 효과(parasol effect)'라고 불리는 기온 강하의 주된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해 성층권에 형성된 황산염 에어로졸층은 지구 전체로 퍼져나가며 수년 동안 햇빛을 가렸습니다.
그 결과, 1816년을 중심으로 전 지구적인 평균 기온이 약 0.4~0.7℃ 정도 낮아졌다고 분석됩니다.
이 수치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단 1℃만 변해도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특히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습니다.

화산 겨울 (Volcanic Winter) / 양산 효과 (Parasol Effect)

대규모 화산 폭발 시 분출된 화산재와 황산염 에어로졸이 성층권에 넓게 퍼져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지구 전체 또는 특정 지역의 기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마치 거대한 양산이 햇빛을 가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양산 효과'라고도 불립니다.

이로 인해 농작물 생육 부진, 기근, 생태계 변화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816년, 여름은 오지 않았다: 전 세계를 강타한 '여름 없는 해'

탐보라 화산 폭발 이듬해인 1816년, 북반구의 많은 지역에서는 기이하고 혹독한 기상 이변이 속출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해를 '여름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 또는 '굶주린 해', '천팔백동사(凍死)년' 등으로 불렀습니다.

북미 지역에서는 6월에 때아닌 눈이 내리고 강물이 얼었으며, 여름 내내 서리가 내려 농작물이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피해가 극심하여, 많은 농부들이 굶주림을 피해 비교적 따뜻한 중서부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춥고 습한 여름이 지속되었고, 폭우와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기근이 발생하여 티푸스가 창궐하는 등 심각한 식량난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계속되는 비와 추위로 인해 관광 시즌이 망쳐졌고, 사회적 불안과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중국 윈난성에서는 극심한 저온 현상으로 쌀농사가 망쳐 기근이 발생했고, 인도에서는 몬순 계절풍의 변화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면서 콜레라가 대유행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에도 당시 이상 저온과 흉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탐보라 화산의 영향이 한반도에까지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여름 없는 해'는 단순히 날씨가 좀 궂었던 해가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대규모 기근과 질병을 몰고 왔으며, 사회적 혼란과 인구 이동을 촉발시킨 거대한 재앙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영감: 어둠이 낳은 불멸의 이야기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암울하고 절망적이었던 '여름 없는 해'는 인류 문화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이야기들을 탄생시키는 예상치 못한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디오다티 빌라(Villa Diodati)에서 벌어졌습니다.

1816년 여름, 영국의 젊은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그의 연인이자 훗날 아내가 되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Mary Wollstonecraft Godwin, 훗날 메리 셸리), 그리고 당대 최고의 스타 시인이었던 바이런 경(Lord Byron), 바이런의 주치의이자 작가 지망생이었던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 등과 함께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끊임없는 비와 음산한 날씨로 인해 야외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고,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빌라 안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독일 괴담집을 읽던 바이런 경은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써보자고 제안합니다.
이 '유령 이야기 쓰기 모임'이 바로 현대 공포 문학의 걸작들을 잉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어둠 속에서 태어난 괴물과 흡혈귀

당시 18세였던 메리 셸리는 이 모임에서 영감을 받아 과학이 생명을 창조하려다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를 구상하여 1818년에 출간합니다.
이 작품은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와 인간 소외라는 주제를 담은 최초의 SF 소설이자 고딕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한편, 존 폴리도리는 바이런 경의 미완성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력적인 귀족 흡혈귀가 등장하는 단편 소설 『뱀파이어』(The Vampyre)를 1819년에 발표했는데, 이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큰 영향을 미치며 현대 흡혈귀 이미지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바이런 경 자신도 당시의 암울한 분위기를 반영한 시 「어둠(Darkness)」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탐보라 화산 폭발이 가져온 기후 변화와 음울한 시대상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불멸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토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연의 거대한 파괴력이 인간의 창조력과 만나는 기묘한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나요?

A 정확한 총사망자 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폭발 자체와 그로 인한 쓰나미로 숨바와섬과 인근 지역에서만 최소 7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여름 없는 해'로 인한 전 세계적인 기근과 질병으로 인한 추가 사망자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일부 연구에서는 수십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Q 탐보라 화산은 지금도 위험한가요?

A 탐보라 화산은 여전히 활동 중인 활화산으로 분류됩니다.
1815년 대폭발 이후에도 몇 차례 작은 분화가 있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화산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1815년과 같은 규모의 폭발이 단기간 내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잠재적인 위험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Q '여름 없는 해' 사건이 현대 기후변화 연구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A 탐보라 화산 폭발과 '여름 없는 해'는 대기 중 미세 입자(에어로졸)가 지구 기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이는 현대 기후변화 연구에서 화산 활동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으로 인한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기후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후 변화가 식량 안보, 사회 안정, 인간 건강 등 다방면에 걸쳐 심각한 연쇄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하며, 기후 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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